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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포토m 2009. 12. 5. 09:59

 

 

 

 

 

 

 

 

 

 

 

 

 

 

 

 

 

 

 

 

 

 

 

 

 

 

 

 

 

 

 

 

 

 

 

 

 

 

 

 

 

 

 

 

 

 

 

 

 

 

 

 

 

 

 

 

 

 

 

 

 

 

 

 

 

 

 

 

 

 

 

 

 

 

 

 

 

 

 

 

 

 

 

 

 

 

 

 

 

 

 

 

 

 

 

 

 

 

 

 

 

 

 

 

 

 

 

 

 

 

 

 

 

 

 

 

 

 

 

 

 

 

 

 

 

 

 

 

 

 

 

 

 

 

 

 

 

 

 

 

 

 

 

 

 

 

 

 

 

 

 

 

 

 

 

 

 

 

 

 

 

 

 

 

 

 

 

 

 

 

 

 

 

 

 

 

 

 

 

 

 

 

 

 

 

 

 

 

 

 

 

 

 

 

 

 

 

 

 

 

 

 

 

 

 

 

 

 

 

 

 1945년 8월 광복 직후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이 경성대학(京城大學)으로 개편되었고, 1년 후인 1946년 10월에 서울대학교가 개교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국대학의 시설이 그대로 승계됨으로써 규장각도서도 규모나 보관 장소의 변경 없이 소관처의 이름만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바뀌었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동란으로 규장각도서가 큰 위기를 맞았다. 북한군의 급작스러운 남침으로 이루어진 1차 서울 점령시에는, 규장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피난 대책이 전무했었다. 그 기간 동안에 규장각 도서의 일부가 포장, 반출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다행히 원상복구되었다. 그 때 창경궁 내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되었던 왕실 도서 중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통칭 적상산본(赤裳山本)이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하였다가 3개월 후인 1951년 1월 4일 후퇴함으로써 북한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하였다. 1.4 후퇴를 목전에 둔 급박한 시점인 1950년 12월 10일부터 28일 사이에 3차에 걸쳐 규장각도서 중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備邊司謄錄〉(비변사등록),〈日省錄〉(일성록),〈承政院日記〉(승정원일기) 등, 후일 모두 국보로 지정된 전적 8,657책이 군용 트럭에 실려 전시 수도(戰時首都) 부산으로 수송되었다. 전란 중에 이 도서들은 포장된 채로 부산의 관재처 창고, 경남대한부인회 창고, 경남도청 창고 등을 전전하다가 정부가 환도한 수개월 후인 1954년 6월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서울에 남아 있던 도서들도 무사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야 규장각도서에 대한 본격적인 정리작업이 시작되었다. 1962년 5월에 서울대학교 부속중앙도서관 안에 규장각 도서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곧 〈奎章閣圖書韓國本書名索引〉(규장각도서한국본서명색인) 1부 4권이, 이듬해 1963년 8월에는 〈奎章閣圖書中國本書名索引〉(규장각도서중국본서명색인) 1부 1책이 완성되었으며, 1964년 9월부터 1966년 6월에 이르는 1년반 기간에 소장 고문서 52,000여건을 정리하였다.
1973년에는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備邊司謄錄〉(비변사등록),〈日省錄〉(일성록),〈十七史纂古今通要〉(십칠사찬고금통요), 〈宋朝標전總類〉(송조표전총류) 등서가 국보로 지정되었다.
2006년 2월 1일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가 통합되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라는 명실상부한 연구기관으로 재탄생하였다
출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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